우리 나이로 쉰 살의 가을이다. 스무 살이나 서른 살의 젊은 가을보다는 편안하다. 나이가 들면서 몸의 기운은 점점 떨어지고 느릿 해지지만 그만큼 편안함이 생긴다. 지금과 같은 마음을 스무 살에 갖고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삶의 시간은 무심히 흐르지만 모든 일은 지난 후에야 알게 된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 가고 있다. 마치 아무도 만나지 않고 숨은 채로 시간을 보내다 혼자 죽음을 맞이하려는 것처럼 깊고 깊은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리하여 내가 도착할 곳은 아무도 없는 장소가 될 것이다. 쓸쓸하겠지만 그게 내가 가야할 길이며 누구나 그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혼자만 있는 그 곳 말이다.
시간을 보내면서 나이를 제대로 먹게 되면 조금이나마 세상 일을 엿볼 줄 아는 능력이 생긴다. 종교나 정치와 같은 구태한 세상사부터 자신의 내면까지 또,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만약 50이 넘어서도 그런 일에 아무 관심 없이 그저 돈 벌 궁리만 하고 있다면 시간은 머리로 들어오지 않으며 항문으로 들어 오게 된다. 항문으로만 시간을 먹게 되면 나이를 더 먹을 수록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게 뻔한 이치이다. 손가락질 받지 않고 늙으려면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시간을 머리로 들어오게 해야 된다.
지난 9월9일부터 가영이와 아침에 산책을 하고 있다. 장례식장에서 자던 날과 추석날 아침을 빼고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6시 반에 일어나는 일이 예전에는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저절로 눈이 떠진다. 술이 떡이 되어 있어도 그 시간이면 눈을 뜨게 된다. 처음에는 아침의 깊은 단잠에 빠져 있는데 가영이가 흔들어 깨우며 산책 가자고 조르곤 했는데 몇 일 지나고 나서는 적응이 됐는지 저절로 눈이 떠진다. 첫날 아침 집 앞 산책 길을 졸린 눈으로 걷고 있자니 주변에 코스모스가 울긋불긋 보인다.
산책길 주변으로 한두 송이 듬성듬성 보이던 코스모스는 하루가 지날 수록 조금씩 많아지더니 조금 지나서는 코스모스 숲이 되어 그 길은 말 그대로 꽃길이 되었다. 꽃길은 바로 내 집 앞에 있었던 것이다. 추석이 지나면서 하루만에 기온이 10도 정도 떨어진 듯하다. 그 덕에 꽃길에 코스모스는 이제 서서히 자취를 감출 준비를 하고 있다. 내년 가을이 되었을 때도 지금과 같이 아침 산책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올해보다는 조금 더 자세히 그 느낌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야겠다. 올해는 정신 없이 일어나 나가기에 급급했지만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맑은 정신으로 그 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쉰 살의 가을은 나로 하여금 더욱 쉰 살을 느끼게 만든다. 아무리 길게 살아도 우리 인생의 시간은 100년을 넘지 못한다. 보통 70이 되면 죽을 준비를 하는게 맞다. 20여년의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다. 지구라는 별에서 태어나 지내온 시간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그저 임시적인 시간을 갖고 태어나서는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다 떠나는 것이 인생이라면 아침 산책 길에서 발밑에 죽어 있는 벌레와 무엇이 다른가. 비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영원할 수 없는 임시적인 시간이 계속해서 흐른다. 아침 해가 북한산 뒤로 떠오르며 하루가 시작되지만 그 하루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조용히 침묵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