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를 보면 거의 매일 알고 싶지 않은 일들이 대서특필 되어 뉴스 없이 살아 가고 싶은 사람조차도 알게 되는 사회적인 사실들이 있다.
우리 나이로 8살, 즉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나이다. 나도 8살 때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사람의 인생에서 기억이 조금 쌓였고 그 기억은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마치 꿈을 꾸었던 느낌처럼 남게 되는 기억이다. 그 시절의 기억은 그 사람의 평생에 걸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또 그 때 아이는 어른의 말을 매우 안듣고, 말만 하면 꼬투리를 잡으며 마치 세상을 모두 알고 있는 도인처럼 행동하고 말한다. 아빠나 엄마같은 사람이 엄하게 굴지 않으면 자신의 노예처럼 부리려고 하는데 그 모습이 가끔은 도를 지나쳐서 매우 미울 때가 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고 어른을 알아본다.
물론 아이의 모든 행동을 웃으면서 넘어가고,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있다. 아이의 기가 꺽이면 안되기 때문에 누구도 나의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없다. 행여 나의 아이를 나무라는 사람들은 모두 공격 대상이 된다. 우리는 그런 아이의 부모를 충(蟲)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자식을 그렇게 막무가네로 키우는 사람은 드물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상식의 범주에서 아이를 키우는데, 바로 안전을 위해서이다. 아이와 나의 안전은 상식 선에서 지켜 질 수 있다.
그런데 가끔 비상식,몰상식적인 일들이 생기고 그런 일들이 뉴스가 되어 일반화 된다. 세상이 혼탁해 지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어떤 일들, 특히 범죄적인 일들이 뉴스에 나올 때는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에 뉴스에 나오는 것이다. 5천만명이 넘게 살아 가는 사회에서 일년에 몇 번 정도 생길 수 있는 일이다. 매우 끔찍하고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기 때문에 뉴스에 나오는 것인데, 그런 뉴스가 반복 될 수록 사람들은 세상이 그렇게 돌아 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뉴스 속의 일들이 반복 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뉴스의 입장에서는 매우 호재가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반복 되는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된 매우 아픈 일, 바로 계모에 의해서 죽어간 8살 작은 남자 아이의 사연이다.
뉴스 속의 8살짜리 작은 아이를 생각하니 어제는 밤에 잠을 한 숨도 못 잘 지경이 되었다. 지금 나의 아들과 동갑,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책가방을 메고 학교라는 곳에서 새롭게 생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아이, 새봄, 내리 쬐는 햇볕 속에서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뛰어 다니고, 가끔 핸드폰 게임 속에 들어가서 즐거움을 찾고, 엄마와 아빠의 따뜻함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놀고 있어야 될 그런 아이. 그런 아이가 우리 사회에서 지켜지지 못하고 계모의 무참한 손에 의해서 3개월 간에 걸쳐서 서서히 죽어갔다. 그리고 모든 범죄의 행위가 끝난 후에야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뉴스에 나오는 것과 같은 처지에 있지만 아직 뉴스에 등장하지 않고 있는 그런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이런 뉴스가 처음 등장한 이래로 반복해서 같은 뉴스가 나오고 있으며 그 주기도 짧아 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지켜 주지 못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방증이다.
꿈결 같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매우 슬프고 비상식적인 상태에서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성장한 사람들, 그리고 최소한의 인격이 만들어지지 않은 체로 어른이 된 사람들이 만든 가정과 그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 말그대로 생존, 오직 생존만을 위해서 울부짖으며 지내는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을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섬짓해진다. 사회가 건강해야 그 속에 있는 구성원이 모두 건강할 수 있다는 어느 선지자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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