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서 보장하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왕을 뽑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뽑은 왕이 나라를 통치하지 않고 허울 없는 왕의 그림자가 통치를 하고 있었다. 그런 우려는 우리가 왕을 뽑을 때 이미 징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우리의 몽매함 때문에 결국 그녀가 왕이 되었다.
잘못은 우리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손으로 왕을 뽑았기 때문이고, 애초에 있던 여러 가지 우려를 무시한 채로 옛날의 향수를 그리워하며 군인었던 지금 왕의 아버지가 통치하던 시절 처럼 다시 그렇게 역동적인 시절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그렇지만 나는 그녀를 찍지 않았다!)
음모로 치부되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났다. 실망감은 극에 달하여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들 허탈함과 분노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저 촛불을 들고 잘못된 것들을 외치면서 기도하는 심정으로 하늘을 바라 볼 뿐이다. 그렇지만 다시 시간을 되돌려도 이런 일들은 반복되고 말 것이다.
군인이 힘으로 왕이 되었던 시절이 끝나고 우리 손으로 왕을 뽑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쯤 전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 손으로 누구를 왕으로 뽑았는가? 다시 군인을 뽑았다. 내가 그를 뽑지 않았어도 다수의 더 많은 사람이 그를 선택했기 때문에 왕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가 발전한 것인가? 시간은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역사는 뒤로 돌아가는 것이다. 실망스럽기 그지 없는 사실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국민을 외친다.
그리고 그 정치인들이 국민의 이름으로 어떤 자리에 올랐을 때 모두들 해먹기 바쁜 모습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라기 보다는 해먹기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또 속았구나 하면서 허탈한 마음으로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지만 언제나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정치인을 탓할 것인가? 남탓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들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너무 심각하여 왕을 탓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너무 화가 나고, 치욕스럽고, 자괴감이 생기면서 슬프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정지 상태가 되었으며 온 우주의 기운이 나를 짓누르는 듯하여 숨쉬기 조차 힘들고, 주머니에 돈도 없고 아이들을 보면서 미안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가 생겼다.
우린 그동안 국민으로서 직무를 유기해왔다. 그래서 저런 무리가 왕이 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두고 보기에는 너무 잘못되었다. 시계를 40년 전으로 돌려 놓았다. 이 가을 그저 암울한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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