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남 산청에 며칠 머물렀습니다. 이틀 밤을 보내는 일정이라 장소를 몇 군데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성철스님의 생가였습니다. 스님이 태어나서 출가하고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누더기가 되어 있는 옷이 유리관 속에 전시되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의 오래된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옷 한 벌은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옷이 헤져 기울 수도 없을 만큼 고치고 수선한 흔적은 스님의 소박한 삶의 방식을 인상 깊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갖고 싶은 물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쇼핑 채널에서 온갖 새로운 기기와 물건과 음식들이 바로 매진되니 빨리 주문하라고 합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철스님의 옷은 흔히 말하는 무소유의 실체였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며 나를 둘러싼 수많은 물건들을 떠올리며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소비를 통해서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처럼 매력적인 일은 없을 것입니다. 돈을 지불하는 소비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성취감을 맛볼 수도 있으며 돈을 지불하면서 우월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또 원하는 물건을 갖게 된 순간의 충족감은 생각보다 꽤 크고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카드빚을 지면서도 끊임없이 물건을 사들입니다. 빚이 없는 사람이 어찌 보면 부자인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신용카드에서 생기는 빚과 은행에서 빌려온 빚, 또 집을 사면서 생기는 빚 등 소유를 위한 소비 때문에 도처에 빚이 늘어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쇼핑이 중독이 되어 과소비가 일상이 된 사람도 드물지 않습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과소비 때문에 생긴 문제가 삶의 질을 매우 떨어뜨립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 우리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만 갖고 소박한 생활을 누린다면 돈이나 물건의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삶의 주도권을 갖고 자유를 만끽하며 지낼 수 있습니다. 흔히 스님들이 이야기하는 무소유는 아닐지언정 생활에 필요한 몇 가지의 물건만으로 살아 보는 것입니다. 최근에 와서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시민들이 돈이나 물건에 구애받는 삶의 방식이 아닌 그것의 주인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나 블로그 글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적게 소유하고 살아가는 방법은 다운사이징, 미니멀리즘 등의 이름으로 사회운동 형태로 도약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사회운동에 참여하여 경험과 방법을 공유하고 작은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공통점은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적어질수록 개인적인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는 시간을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건을 많이 갖게 되면 그것을 구입하기 위한 비용을 벌기 위해서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하고, 또 물건을 관리하고 정리하는 시간들도 적지 않습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 내가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나를 소유하고 지배하게 됩니다. 물건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갖고 있는 물건을 팔거나 기부를 하고 꼭 필요한 생활용품 외에는 구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게 되고, 정리하고 치우고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도 매우 줄어듭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 대부분을 극단적으로 버리거나 기부를 하고 심지어는 집마저도 필요 없게 느껴져서 컨테이너 박스 같은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새벽에 두어 시간 우유배달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는 비용이 생깁니다. 그리고는 남는 시간을 모두 자신의 열정을 위하여 사용합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글을 쓰거나 하는 등의 창조적인 작업입니다. 당장은 돈이 되지 않지만 그런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열정을 바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렇게 보내는 시간은 충만하고 행복합니다. 결국 갖고 있는 것이 적을수록 행복감은 비례해서 상승하는 진리를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지구상에서 제일 부자이며 강한 나라하면 우리는 미국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은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1957년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의 약 35% 정도가 매우 행복하다고 느꼈는데 1957년 이래로 행복에 대한 조사에서 저 수치를 넘어선 적이 없습니다. 행복의 척도로 물질적 부만 강조하는 사회의 구성원들은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이러한 통계가 증명해줍니다. 우리나라도 미국 못지않게 이러한 통계가 잘 맞습니다. 과거 우리가 못살던 시절에 살던 우리의 부모님들 세대에서는 자살이나 암 발병과 같은 극단적인 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낮았습니다. 물질적 부를 어느 정도 축적한 현재 우리 사회는 이와 같은 극단적 병이 만연해 있습니다.
행복의 척도는 물질적 부와 관계가 없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형제들은 아버지가 떠난 후에 서로 싸울 일이 없지만 부잣집에서는 아버지가 떠날 기미만 보이면 싸움부터 시작합니다. 명절 때 나오는 단골 뉴스 중에 하나입니다. 갖고 있는 것들 중에서 쓸모없는 것들은 버리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기부를 하면 행복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갖고 싶은 물건을 손에 쥐었을 때 행복해하지만 반대로 필요 없는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주거나 기부하는 행위도 충분히 행복감을 가져다줍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결정에 달린 일이지만 무엇이 더 기분 좋은 일인지는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위대한 스님들이 말했던 것처럼 굳이 무소유를 삶의 방식으로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며 적응이 될 때까지 커다란 고통을 감수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소박한 생활을 마음먹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소유보다는 나눔이 더 큰 기쁨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행동에 옮기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변을 둘러보고 무엇부터 버릴까, 누구에게 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바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큰 충격을 받은 40대 후반의 여성은 지출 내역을 살펴보면서 생활 방식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과거의 생활 방식이 자신을 암으로 이끌었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무엇을 바꿀까 궁리하다가 소박한 생활 방식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 전환점을 돌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매우 건강한 모습으로 활기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생활방식은 열정, 건강, 자유, 행복과 같이 우리가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들을 선물합니다.
월간암-2018년4월호 희망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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