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인간만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다 간다. 잠에서 깨어 나면 먹을 것들을 찾아 헤매고 새끼가 생기면 그 새끼가 어른이 되어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때까지 보살핌을 주다가 어느 순간 문득 죽음의 문턱을 넘는다.

인간은 어떠한가.
철이 들었다는 것은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영아기, 유년기를 지나서 청소년기가 되었을 즈음 그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진다. 그리고 두려움이 싹튼다. 두려움은 나를 지켜 주는 근원이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마음 속에서 매우 커다란 존재가 되지만 어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보다 더 큰 존재가 마음 속에 있다. 그것은 태어나서 살아 가는 시간 동안에 만들어지는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 중에 하나이므로 마음 속에 상처를 덜 받도록 애써야 한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에게 매우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이며 어린 시절의 상처는 모두 부모에게서 비롯된다.

사람의 기질에 따라서 그 상처를 극복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나의 이미지는 부모에게서 만들어진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는 부모에게서 내려온다. 인생을 산다. 평범하고 돌출되지 않고 그럭저럭 삶의 시간을 보낸다. 평탄한 부모를 만났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달을 다녀 온적이 있기 때문에 더이상 달은 두려움의 영역이 아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무언가를 경험하게 되면 그것은 인류의 공통점이 된다. 그래서 우리의 경험은 모두가 공유하고 경험은 두려움을 없앤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온전히 두려움의 영역이다. 그 이후를 떠벌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온전히 사기를 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길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삶을 살고 있을 때 아마도 영원할 줄 알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있을 수없다. 그래서 문득 죽음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치를 떤다. 결국 죽음은 삶과 연결 되어 있는 영역이다. 삶이 없으면 죽음도 없다. 내가 자식을 나았다는 것은 그의 죽음을 나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이유는 죽음에 있다. 삶을 함부로 아무렇게나 할 수 없는 이유이다.

물리적으로 죽음은 나의 몸을 잃게 되는 사건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머리 속에 있는 뇌가 사라진다. 나라는 존재는 모두 뇌 속에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국 나는 나를 잃게 된다. 나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잠에 든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꿈도 꿀 수 없고, 뒤척거리며 잠자세를 편하게 잡을 수도 없다. 가만히 누워 있는 상태가 된다. 또 장례에 따라서 화장이나 묘를 쓰겠지만 이미 몸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닌 상태가 된다. 또 시간은 어떻게 지나는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어느 시점이든 여행을 할 수 있지만 역시 뇌가 없기 때문에 인식이라는 것이 없다. 그저 바람일 뿐이다.

마음은 어떻게 되는가?
마음도 몸속에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마음의 작용이 우리 행동의 근원이다. 마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뇌를 통해서 인식이 먼저 일어나야 될텐데 이제 그러한 일들이 사라지므로 기존에 갖고 있는 것들로만 작용할까? 아마도 그러겠지. 그래서 삶속에서 갖고 있는 마음이야말로 나의 유산이 되는 것이다. 저승 길의 노잣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선과 악으로 구분 되는 이분법의 문제는 아니다. 저승에서 나를 심판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종교인들이 만들어낸 허구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를 심판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심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가 갖고 가는 마음이라는 것이 스스로를 평가할지 모른다.

삶은 나의 마음을 위한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다. 평온함을 찾기 위한 어떤 일들을 끊임 없이 해야된다. 나는 언제든지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고 슬퍼지고, 분노에 끓는다. 마음은 끊임 없이 나를 나쁜 곳으로 이끌려 하지만 우리는 이성적이므로 그것을 잘 붙들어 조마조마한 삶을 유지한다. 마음과 이성은 삶이 지속되는 시간동안 지구와 태양처럼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서로를 돌고 돈다. 죽음은 그러한 관계가 끊어 지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성은 뇌에서 작용하는 범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끊임 없이 나의 마음을 돌보는 연습을 해야된다. 죽으면 더 이상 그런 일을 할 수 없으며 그 때까지 가꾸어 왔던 마음의 단계로 죽음의 영역에 들어 가야 한다. 가장 좋은 일은 어떤 스님이나 신부처럼 마음 자체를 없애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확률적으로 너무나 희박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돌아 보는 일은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언젠가 생길 죽음을 위해서…